‘역학력 세탁’ 시대… 코스피 6천 장세 속 중소기업 아빠의 씁쓸한 고민

  • 어제저녁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탓일까.
    수요일 오후, 몽롱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뉴스 기사 하나를 마주했다.
    글로벌 반도체 호황으로 역대급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는 SK하이닉스 생산직 채용에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 학력을 ‘고졸’이나 ‘전문대졸’로 속이고 지원하는 이른바
    ‘역(逆)학력 세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닉고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뜨거운 대기업의 채용 열풍…
    하지만 모니터 너머의 그 화려한 잔치를 바라보는 나의 현실은
    왠지 모르게 서늘하고 씁쓸하다…
  • 라떼는 말이야~ 대학교 졸업장이면 회사들이 줄을 섰어 줄을!!

나만, 우리 회사만 힘든 걸까?

코스피가 6천을 넘어 7천을 향해 간다는 장밋빛 전망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다들 주식으로, 코인으로, 혹은 대기업의 두둑한 성과급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15년 넘게 몸담고 있는 이곳, 중소기업의 현실은
뉴스 속 세상과 너무도 다르다.
작년보다 체감 경기는 훨씬 더 차갑게 얼어붙었고
진지하게 인원 감축을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닌지 위기감마저 감도는 실정이다.
세상은 저렇게 호황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리는데
우리 회사만, 아니 나 혼자만 이 거대한 흐름에서 소외되어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무너진 공식, 숨겨야 하는 대학 졸업장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학력=고임금‘은 우리 사회의 절대적인 공식이었다.
부모님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식들을 4년제 대학에 보냈고
그 졸업장은 더 나은 삶을 위한 최소한의 보증수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랑스러운 4년제 졸업장을 숨겨야만 돈을 많이 주는
대기업 생산직에 원서라도 내밀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높은 스펙이 오히려 취업의 방해물이 되어버린 이 아이러니한 상황.
청년 일자리가 씨가 말랐다고 아우성인 현실 속에서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연봉과 안정성을 좇아
학력마저 세탁하는 청년들의 절박함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엄청난 대우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가르쳐야 할까

이 뉴스를 보며 내 머릿속을 가장 어지럽게 한 건
훗날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고 가정을 꾸릴 우리 세 딸들의 얼굴이었다.

나는 평소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빠처럼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대학 졸업하면 꼭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기분 좋은 직업을 찾아라.”

하지만 오늘 이 기사를 보고 나니 내 교육관이 과연 현실적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꿈이고 자아실현이고 다 떠나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고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가 아닐까?
당장 아이들을 앉혀놓고
“무조건 대기업에 가라, 반도체나 AI 엔지니어 쪽으로 진로를 정해라”
라고 현실적인 조언으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혼란스럽다.

정답 없는 시대의 부모 노릇

술이 덜 깨서 생각이 더 많아지는 오후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경제적 계급이 역전되고 기존의 상식이 무너지는 혼돈의 시대 속에서
그저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땀 흘린 만큼 인정받고
자신의 학력과 노력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1844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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